최근 ‘멘토’라는 단어가 많이 쓰이고 있지만 정작 멘토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예전에 주위의 몇몇 사람들과 이야기해본 바로는 일반적으로 정의되는 ‘풍부한 경험과 지혜를 겸비한 신뢰할 수 있는 사람’정도로만 알고 있다. ‘코치’보다 단지 조금 더 있어보이는, 또는 고상한 표현으로써 쓴다는 느낌이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모르는 것은, 멘토는 그리스 시인 호메로스의 ‘오딧세이’(약 BC 1000년)에 나오는 인물이라는 것이다. 이타카의 왕 오딧세이는 트로이 전쟁에 참전하기 위해 떠나기 전 자신의 오랜 친구인 ‘멘토’를 불러 이야기한다. “내 어린 아들 텔레마쿠스와 궁정의 살림을 부탁함세, 우린 오랜 친구이지 않나”. 이 부분에서 사람들은 멘토를 아버지를 대신하는 스승, 현자 등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여기까지 알았다 하더라도 잘 모르는 것이 있는데… 멘토는 사실 오딧세이가 부탁한 것을 성공적으로 해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오히려 텔레마쿠스를 지혜로 이끌어준 인물은 멘토로 변장한 여신 아테나이다. 트로이 전쟁이 끝난 후에도 오딧세이가 돌아오지 않자 주변 사람들은 그가 죽었다고 했지만, 아테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살아있다며 그를 찾아 스파르타로 갈 것을 권유한다. 또한 오딧세이가 죽었다며 그의 아내 페넬로페에게 구혼하는 수많은 구혼자들은 그의 궁에서 매일 염소와 양을 잡고 포도주를 마시며 가산을 탕진해버렸다. 궁정 살림을 지켜야할 멘토는 어디에 있었는가?
사실 ‘오딧세이’라는 작품은 트로이 전쟁을 마친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고도 험난한 여정’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험난한 바닷길에는 스벅의 요정 세이렌(Siren)이 치명적인 독을 넣은 캬라멜 마키아또를 내려 진한 커피향을 날리면서 “날도 더운데 커피 한잔 하고 가시지 않겠소?” 라며 유혹하지만 오딧세이는 “나에게는 사랑하는 아내 페넬로페가 기다리고 있소”라며 그 유혹을 뿌리쳤을 것이다. 그래서 오딧세이라는 단어는 ‘길고 험난한 여정’이라는 의미로도 쓰인다.
오늘날 사용되는 ‘멘토’, ‘멘토링’이라는 단어의 근원은 호메로스의 오딧세이가 아니다. 오딧세이를 재해석한 프랑스 작가 페넬론(Francois Fenelon)의 소설 ‘텔레마쿠스의 모험 (Les Aventures de Telemaque, 1699)’에서 나왔다. 여기서 주인공은 바로 멘토이다. 텔레마쿠스의 모험에 함께하며, 아버지의 빈 자리를 대신하여 그를 양육하고, 지혜로 이끌어주고 결국엔 그를 성공의 자리에 올려놓는다는 알흠다운 줄거리로 된 계몽주의 소설로 재해석한 것이다. (여기서 또 반전은 멘토는 미네르바가 변장한 것이라는 것...너는 아직도 내가 멘토로 보이니?) 암튼 이에 후대 사람들이 멘토를 ‘풍부한 경험과 지혜를 겸비한 신뢰할 수 있는 사람’으로 정의하여 사용하기 시작하였더라는 얘기.
페넬론의 멘토가 되고자 하지만 결국은 호메로스의 멘토와 같은 결말을 맞는 경우가 많다. 대다수의 사람은 자신의 삶을 살아가기에도 벅차다. 그러니, 멘토… 함부로 되려고도 하지 말고, 그런 사람을 찾으려고도 하지 말자. 어차피 자신의 인생은 자신이 사는 것이므로.